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

파촐리, 박애진, 전혜진, 권민정, 양원영, 남유하, 아밀, 이서영, 전삼혜, 박소현 저

온우주, 2018

예전에 <혁명하는 여자들>이라는 여성작가 단편집을 재미있게 읽을 기억이 있어요. 자의식이 분명한 여성 작가들의 개성과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기획의도가 엿보이는, 제목처럼 강렬한 작품집이었죠.

우리나라 장르소설 중에도 (제 예상이지만) 그런 의도로 기획된 작품집이 있습니다. 

조금 투박한(?) 제목의 단편집이에요.

전체적인 인상은, ‘혁명하는 여성작가’들은 아니에요. 제목 그대로 ‘여성 작가들이 쓴’ SF단편집이죠. 그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덜 버려진 느낌이 들기도 해요.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이니까요. 목소리와 색깔을 지향하는 기획은 그 자체로 멋진 시도이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SF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기를 바래요. (물론 그러기 위해선, SF를 찾아 읽으시는 독자들이 필요합니다)

개인적 취향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 몇 편을 소개하면.

국립존엄보장센터 / 남유하 작

생존세를 내지 못한 독거노인이 국립존엄보장센터에 들어가 ‘마지막 하루’를 보냅니다. 그녀는 순순히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요?

<시녀이야기>나 <앨저넌에게 꽃을>같은 SF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좋아하실만한 작품이예요. 같은 아련한(?) 정서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죠. 근미래의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 소외된 개인을 보여주는데, 그런 작품들은 대개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이 드러나고, 그것이 작품의 질을 좌우하지요. 이 작품에선 허울뿐인 미래의 고려장(?)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거하는 화자의 행동이… 동감과 여운을 느끼게 해요.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마지막 행동을 강조하기 위한, 전반부 심리와 상황이 좀 더 묘사되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그러나 SF의 문법에 충실하고 작가의 의도와 정서가 제대로 드러난 작품 같아요. 

궤도의 끝에서 / 전삼혜 작

짧고 간결하지만, 그보다는 긴 여운이 있는 작품이에요. 지구가 멸망하리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달에 오게 된 화자(소년?)가 지구에 남겨진 연인(소녀?)를 그리워하는… 그 감정이 멸망을 앞에 두고 애잔하게 그려지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평소 SF에 멜로 코드를 까는 것이 장르의 낭비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작품은 SF 요소와 감성이 잘(?) 어우러져 있어요. 밸런스가 잘 맞는다고나 할까요? 또 시각적이라 좋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멸망을 앞둔 배경과 달과 지구에 떨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는 주인공들… 영화화 해도 멋진 원작이 될 것 같아요. (영화인이신가요? 일독을 권합니다)

기사증후군 / 박소현 작

갑자기 남자들이 돌연사하기 시작했다. 기사증후군, 여자들이 원인이다! 당국은 남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체’ 여자들을 격리 수용해 교화 작업에 들어가는데… 잘 될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에요. 익숙한 SF 설정 속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하게 내뿜고 있죠. 또한 그 목소리는 분명한 만큼 유쾌하기도 해요. 아무도 상처 받지 않아요. 자각할 수만 있다면… 페미니스트 여성작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 책을 고르셨다면, 분명 만족하실 이야기예요.

*

작품을 평가할만한 능력이 없고 그럴 입장도 못 되지만, SF 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작품집의 시도에 응원을 보냅니다. 작가들의 노력에도요. 좀 더 많은 분들이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책 후기의 심완선 평론가의 코멘트로 마무리.

“여성 작가들은 ‘여성적’이지 않으며 ‘여자다운’ 글을 쓰지 않는다. 자기 자신다운 글을 쓸 뿐이다.” 공감합니다. 사실 모든 작가들이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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