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ET의 ‘심플한’ 이야기 구조에 대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의 스토리가 어렵다며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네요. 과학적 설정과 어려운 용어들, 인물들의 포지션, 거기에 정신 없는(?) 영상들이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것 같지만… 의외로 <테넷>은 대단히 심플한 영화예요.

놀란 감독의 영화들은 대개 스토리가 단순합니다. <인셉션>조차 인물들이 2중3중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끝나는 영화였죠. 그 단순한 스토리 안에 새로운 설정들과 함의, 여운, 그리고 거대하고 화려한 영상들을 채우면서 영화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을 취합니다.

놀란 감독을 비주얼 감독으로만 아는데, 실은 그는 시나리오를 잘 쓰는 감독으로 더 유명하죠. 그런 그답게 <테넷>의 시나리오는 심플하고 ‘명쾌’하기까지 합니다.

해서, 아직 안 보신 분들 위해 참고용으로.

1.

이 영화는 간단한 스토리 구조를 따라갑니다. 이야기의 절반까지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다가, 이후 역순으로, 시작 부근까지 되돌아오는 전개를 취하고 있죠.

주인공은 처음 정체불명의 집단 TENET에 합류해 요원이 되고 , (미래에서 명령을 받는)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당을 추적하다가, 어느 순간(캣이 총에 맞는)부터 그녀를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여기까지가 전반부인데. 후반부터 이 영화의 차별성이 드러납니다

후반에서 주인공은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순간부터 순차적으로, 전반에 자신이 거쳐온 장소들을 되거치면서, 캣을 살리고 악당을 잡을 방법을 계속 모색한다

딱 그런 구조를 가진 영화예요.

2.

전반에 주인공은 악당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인버젼(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시간을 거스르는)이라는 낯선 상황들을 목격하는데… 후반에 그 상황들에 다시 노출되면서, 인버젼을 일으킨 주체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바로 본인 자신이죠.

그 장면들을 이해 못하는 분들이 있던데. 그것은 이 영화가 ‘시간’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에요. 감독이 타임리프(? 라고 쓰면 안 되겠다. Rewind?) 소재에서 클리셰 대신 신선한 액션을 원했기 때문이죠. 의미보다는 시각적 쾌감을 주기 위해서. (실제로 이질적이면서 신선한 재미를 주는 장면들이에요)

3.

인버전 / 엔트로피 / 할아버지의 역설… 같은 과학 용어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과학계에서 이론이나 가설로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영화에서는 감독이 그 이론/가설을 비틀어 설정한 것들이에요. 있어 보이지만 영화적 허구라는 뜻이죠.

그러니 의심하기보다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좋아요. 판타지 영화에서 ‘마법’을 보는 것처럼. 어떤 과학은 마법처럼 보이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4.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마지막 10분 간의 작전을 ‘현재와 미래에서 협공하는’ 하일라이트 시퀀스는 정말 이질적이면서도 멋집니다. 큰 스크린으로 볼 가치가 있지요.

5.

위에서 ‘명쾌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것은 영화 내내 깔아놓은 복잡(한 것처럼 보이는) 밑밥들을, 마지막에 몇 마디 대사로 ‘명쾌하게’ 설명해 내기 때문이에요… 주인공과 닐의 대화에서. 잘 쓴 시나리오들이 보여주는 세련된 방식이죠.

앞에서 말한 이야기 구조를 파악하고, 이 마지막 대사의 의미를 간파한다면… <테넷>은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저 즐기시기를.

6. 덧.

이 글을 쓰면서 사람들이 왜 영화를 어렵게 느낄까, 생각하다가… 어려운 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첩보 장르는 익숙하지만, 거기에 혼용된 SF 장르는 낯설어 보이는 것이죠.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어려워 보이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평소 SF 소설들을 읽어둡시다. 이왕이면 토종 SF로 말이죠.

<TENE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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